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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의 종이 울리길

라요0716 2025. 4. 22. 16:50







다른 모든 날들이 신나고 유쾌하진 않지만, 오늘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날이었다.

우리가 잠시 함께하던 용병들 중 누가 죽었기 때문이다.

"아니 아니! 그것부터가 아니지."

"무슨 의미죠?"

"시작은 네가 그 하프엘프 가족한테 우리 재산의 대부분을 공짜로 날려 보냈을부터 엉망이었거든??"

"우리야 또 벌ㅁ
"또 벌면 되니깐 괜찮다. 돈은 세속적인 거고 진정한 행복과는 관련 없다. 나나나나나. "

"그게 우릴 어디로 데려왔는지 봐. 즉석 장례식!"

아스타리온은 두 팔을 크게 휘둘러 숲 한가운데에서 죽은 용병을 추모하고 있는 이들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이에 오에는 입을 꾹 닫은 채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었다
오에는 이 죽음의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밝은 녹색빛으로 반짝였다.

"원래 일정이었으면 3일 반이면 도착한다고 자기들이 장담했잖아!!"

수도승으로써 수련을 백 년 이상 한 그녀에게는 생물의 기가 보인다.

모든 생물한테 있는 기. 그녀의 눈에는 영롱한 빛, 에너지 덩어리로 몸에 흐르는 게 보인다.

가장 크게 흐느끼는 자의 기가 정처 없이 몸에서 휘몰아치는 게 보인다. 저자는 내일 몸져눕겠구먼.

"그래놓고 지금 꽃이나 따고 나무 캐고 뭐 하는 거람?? 가지고 있는 식량은 왜 태우는데!"

죽은 그 용병은 무얼 한지 모르겠지만 전부터 기가 엉망이었다.

몸에 기가 거의 안 남은 건 더불어,  심장의 왼쪽 아랫부분에는 기가 눌러붙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자기가 풀어주더라도, 바로 다시 엉켜 죽을 운명.

전투 중 심장마비로 죽었던 거겠지.

"달링!!!! 듣고 있는 거야?????"



.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 앞엔 아스타리온이 목에 핏줄까지 선채로 얼굴을 들이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그의 눈은 그녀가 지상에 올라오며 처음 보았던 자신의 새 삶을 축복해 주던 석양보다 붉었고 자신의 동족과는 닮은 굶주림을 가졌으나 그들 중 누구도 가지지 않은 따뜻함도 지니고 있었다.

"..."

"안 듣고 있었구먼....."

"목소리.."

"?"

"너무 커요. 아스타리온."

휙.

이미 용병들은 둘을 엄청나게 째려보고 있었다.

"아."

"예."

"..."

"어디 따로 가서 마저 대화해요."

오에는 아스타리온이 대답도 하기 전에 어딘가로 성큼성큼 가고 있었기에, 아스타리온은 땅에 뿌리 꽂고 마저 화내지도 못한 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은 마치, 장터에서 장난감을 얻어내는데 실패한 채로 엄마를 찾는 아이와 같았다.




오에는 짧게 말하자면, '잠겨 있는 이'이다.

수영을 못한다는 게 아니다.
그녀는 잔혹한 탄생지로부터 도망치고 도망쳐, 삶 내내 삶에 대한 욕망은 컸지만 도망친 만큼 삶을 즐기고 싶다는 욕망은 버려야만 했다.

팔에 화살이 박히는 고통을 무시하면 더 빨리 도망칠 수 있다.
며칠간의 굶주림의 고통을 무시하면 음식을 찾으러 움직일 수 있다.
누군가가 죽어도 평소와 같이 산다면 너는 건강하다.

어차피 인생은 고통으로 점 칠 되어 있기에 인내하고 내 기준을 낮추면 삶에 고통도 무뎌진다.

그러나 이를 아스타리온은 알지 못했다.

홀로 방랑하는 그녀를, 한 번도 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가 그렇게 걸렸던 거예요?"

용병무리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발길을
멈춘 오에가 말했다.

"우리 일정이 엉망이 되는ㄱ.."

"그거 말고요."

"..."


그녀가 아는 아스타리온은. 지금의 아스타리온은. 더욱더 성숙했을 터다.

일정이 틀어지는 등의 일은 스트레스받을 만 하나, 이리 흥분할 일은 아니었다.

본래의 그 라면 몇 번 불평하더라도, 조금 달래면 금방 다른 일을 찾으러 나서던가, 그들 따윈 무시하고 우린 어디 구석에서 '재미' 나 보진 않겠냐며 속삭였을 터,

"몰라. 스트레스받아서 그런가 봐. 나중에 멧돼지라도 잡아서 마시면 풀리겠지."

오에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아스타리온은. 카사도어를 죽이기 전의 그때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음을.

아스타리온은. 무언갈 두려워하고 있다.




[설득] "난 당신 편이라는 거 알잖아요."

도르륵

{{성공}}

오에는 아스타리온에게서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갔다.

"난 당신 편이라는 거 알잖아요 아스타리온. 두 번은 묻지 않을게요. 당신이 나에게도 말하기 싫은 이야기라면, 누구한테 말하고 싶겠어요?."

사실 주사위를 굴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이 말을 이 참에 하고 싶었다.
당신을 믿는다고.

아쉽게도 잘 웃지 않고 종족값이 있던 그녀이기에. 아스타리온만큼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면 그녀가 협박하는 줄 알 것이다.

올챙이 사건 때 정중히 물었음에도 빌빌 떨며 고블린 부락지의 위치를 대답하던 고블린들을 바라보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아스타리온이라 다행인 주사위 굴림이었다.



입 끝을 잘근거리던 아스타리온은 결국 입을 열어주었다.

" 넌 주변에 누가 죽으면 어떻게 반응해...? "

오에는 매우 기묘한 표정을 짓는 걸 참을 수 없었다.

그녀의 눈썹은 한쪽은 내려갔고 한쪽은 이마 끝까지 올라가는 걸 멈출 수 없었고, 입은 열껀지 닫을 건지를 잘 결정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당신이..?
이런 질문을..?
왜 지금...?

그러나 얼굴은 빠르게 원래대로 돌아갔고, 아스타리온의 식은땀은 몇 방울만 떨어지는 걸로 끝날 수 있었다.

둘이 서있는 곳에 잔디들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아스타리온의 '특성' 때문에, 아스타리온은 늘 이렇게 그늘이 없는 곳에서 대화를 할 땐 태양을 등지고 대화를 해야만 했기에, 오에는 늘  눈이 부신채로 대화를 해야만 했다.

언제부턴가, 오에는 아스타리온과 대화를 할 때 바닥을 보고 대화를 하는 게 버릇이 되었다.

바닥에 난 녹빛 잔디와 갈색의 잔디가 같이 섞여있는 것이 가을임을.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오에는 그중 갈색인 잔디 몇 개를 뜯어 바람에 날려 보냈다.

"... 모든 것들은 기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것은 영혼과는 다른 개념인. 생명과도 조금 다른. 죽음과 삶 그 자체인 것."

"모이면 삶이요 흩어지면 죽음일 뿐."

"그것뿐이에요."

"슬퍼하지도 괴로워하지도 말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죠."

"... 가까운 사람한테도?"

그 말을 듣고 오에는 엄지손가락으로 무언가를 넘기는 쉬늉을 무의식적으로 하였다.

그것은 옛날에 그녀가 들고 다녔던 염주를 넘기는 시늉이었다.

숨을 고른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 힘들더라도요.... 언젠간.... 네."

그녀에겐 주저라는 것이 없었다.
숨을 고른 건 아스타리온을 기다려주는 행위였다.

"... 좋아. 그럼 됐어."

"... 아스타리온..."

이후 어떠한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스타리온은 이미 뒤도 안 돌아보고 다시 숙소로 걸어가고 있었다.




백 년 하고도 몇 년일까...
늘 똑같은 대답을 하던 오에였으나
아스타리온의 뒷모습을 보자 그 이상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실 그녀에겐 슬퍼할만한 주변 가까운 이의 죽음이.

아니.

가까운 이 자체가 그동안 없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한 곳에 정착하질 않는 무뚝뚝한 드로우와 친해지려고 하는 사람부터가 별로 없을 것이다.

지하에 두고 온 동생조차 사랑보다는 죄책감으로 느끼는 그리움이 컸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주변의 부고소식은 그다지 와닿는 일이 아니었다.

올챙이 사건이 있던 지금까지는 말이다.




오에는 모험을 같이한 이들의 죽음은 전처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는 걸 방금 막 깨달았다.

그리고 아스타리온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도 깨달았다.




오에는 안심했다.

그녀도 자각 못한 빈말을 건네버렸지만.
아스타리온은 그 말을 듣고 납득한 것 같았기에.

그가 이후에 자기가 죽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를 따라갈 수 있었다.

만약 그림자로 가려졌던 아스타리온의 표정을 봤더라면 그러지 못했을 테지만 말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용병들과 합류했던 동안 그 이상의 큰 전투는 없었다.
그 덕에 장례식으로 도중에 다시 멈춰야 하는 일도 없었고, 그들은 지연된 일정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얹어 주었다.

아스타리온은 돈을 건네는 용병의 리더의 못난 시선을 받으며 나가야 했으며,

오에는 죽은 이의 가족을 위해 금화 몇 개를 아스타리온 몰래 리더에게 건네고 나오곤 둘은 평소와 같이 방랑을 계속하였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스타리온이 조금... 아니 많이 달라붙게 되었달까...

본래 오에와 아스타리온은  꽤나 캐주얼한 연애를 하였다.

오에가 밥을 먹으러 여관 밑에 내려가면 아스타리온은 그동안 숙소에서 책을 읽기도 하였고,

명상을 해야 할 때도 서로가 방해될까 봐 손만 잡고 있는 걸 선호했다.

그러나 최근의 아스타리온은 정착지에 짐만 다 풀어도 원인 모를 시무룩한 표정으로 오에에게 달라붙었고,

이제는 명상을 할 때 매번 안거나 안기려 들어 다음날 아침 둘 다 뻐근한 몸으로 일어나곤 했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 그녀가 일출과 일몰을 바라보는걸 뒤에서 구경하다 깊은 생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해 돌아온 오에가 그를 몇 번이고 불러야 할 때도 있었다.

이런 변화는 눈치가 없는 오에일지라도 무언가 이상했지만.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아스타리온 용병들과 있던 그때, 자기가 죽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은 것일 테니깐.
언제 갈지 몰라 두려워 더 달라붙는 거겠지.

아플 성장통이다.라고 생각하며 기다려주었다.

적당히 안아주고, 적당히 사랑한다고 해주며 눈앞의 자신이 아직 잘 있음을 알려주며,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달링. 날 사랑하지?"

"당연하죠."

"...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 줘"

"... 사랑해요..?"

"..."

아스타리온은 오에의 명치를 주먹을 쥔 채로 약하게 툭 쳤다.

"... 아야."

그러곤 팔로 오에의 목에서 등까지 크게 휘감아 안은채 파묻히곤 속삭였다.

"나... 잊으면 안 돼."

무슨 바람이 분 걸까 이 남자는.
오에는 천천히 팔을 올려 아스타리온의 뒷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나에게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걸 가르쳐준 이. 나의 두 번째 태양. 나의 영원한 방랑. 나의 종착지. 나의 집. 아스타리온."

"당신은 영원히 나의 일부예요."

아스타리온에게서의 대답은 없었고, 오에는 불평하지 않았다.






엘프들은 명상을 한다.

이 동안은 자신의 과거. 전생을 보게 된다.
그러나 드로우들은. 전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명상을 할 때 무엇을 보는가?

어둠. 그뿐이다.

인간의 깊은 잠 과는 조금 다른, 오랫동안 심연에 담겨있는 기분.

어렸을 때 오에. 카산드라는 이를
암살당한다면 누구에게, 어떻게도 모른 채로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을 때.
가장 부드러운 안식의 무대라고 여겼다.

그러나 지상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며 이는 감옥이 되고 말았다.

아름다운 세상을 방랑하는 걸 막는 시간.
과거의 무력했던 자신을 만나는 시간.

지상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된 오에는 이를 시간낭비로 느껴하며 하는 시간을 최소화하며 방랑을 하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성장하자, 그녀는 명상 속에서 지상에서 산 과거들을 다시 떠올리기 시작했다.

처음 지상에 올라왔던 기억부터, 홀로 세상을 방랑했던 기억들, 노틸로이드에 납치된 기억을 가로지르며 추억하고 되새겨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른 지금. 그녀의 명상 내용은 모두 아스타리온과 함께 한 기억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어찌 그를 잊으라.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그 밖에 없는데.



오늘의 명상에선, 올챙이가 빠지기 전, 발더스게이트에서 그와 함께 일몰을 보던 때의 기억이 지나갔다.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아스타리온은 아직 명상 중이었다.

이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주 그보다 먼저 일어나 일출을 보고 오곤 했기에, 돌아올 때 마을 근처에서 감자 두 알, 물병 몇 개 사서 돌아와 수프라도 끓여 먹어야겠다는 생각이나 하였다.

소고기도 몇 개 사 올까. 철분 섭취를 해야 아스타리온도 배불리 마실 테니깐.
이런 생각을 하며 윗 몸을 일으켜 세웠을 때 오에의 움직임이 멈췄다.

자신의 몸을 휘감던 아스타리온의 팔이 너무나도 기운 없이 흘러내렸기에.

명상을 하는 사람치곤 너무나도 생기가 없었기에.

그녀는 천천히 팔을 뻗어 그의 어깨를 흔들어보았다.


"... 아스타리온."


"........"


"...."


"아스타리온."



흔드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흔드는 와중에 어깨를 너무 세게 잡았다는 사실도, 이 정도 강도가 명상상태를 깨지 않을 리 없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렇... 다면... 뭐지...?


그다음 생각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 생각이 아닌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럴 리가.


안된다.


안된다.


.






제발.








아스타리온이 죽었다.

아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태엽기계인형의 태엽이 다 감긴 것처럼

뚝.

하고 멈춰버렸다.

그의 인위적인 생명이 모두 소모된 것이다.

200년.

악마가 불어넣은 계약의 종료이다.

사랑하는 이가 더 이상 살아있지 않는다.

이는 얼마나 자주 일어나고 끔찍한 일인가?

특히 그가 영원히 살아있으리라 믿었다면.

죽더라도 자기가 먼저. 최악의 경우에도 같이 죽으리라 믿었다면.

그의 표정의 부재가 얼마나 낯설까?



짐승의 울음소리와 같은 것이 오에의 정신을 깨워주었다.

그녀를 정신 차리게 한 것은 배고픔이었다.

동굴 속에서 하늘에 다시 떠있는 달을 바라보며 원초적인 감각에 정신이 몰린 자신이 짐승과 다름없어 보였고.

짐승은 산을 내려가 마을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짐승은 굶주린 눈빛과 금화 한 닢 만으로 대화 없이 원초적인 감각을 만족시켰다.

만족된 이후에도 밤시내의 행인에겐 도인의 모습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한 마리의 놀과 같아 보였다.

그녀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죽은 연인을 두고 어디 갈 생각은 없었으나, 원초적 감각을 채우는 것 이외에 무언가 할 것도, 할 힘도 없었다.

시내의 불은 모두 꺼졌으며, 세상은 어두웠다.
처음부터 빛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은 듯이.





딸랑.


".... 흠...? 드.... 드로우...?"

"시체를 숨기는 건 죄송하다만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 오... 이런... 실례했군요."

"그 표정 전 잘 압니다. 오는 사람들은 모두 그 표정을 짓거든요."

"들어오세요."

"..."

의자에는 부드러운 나무냄새가 났다.

"...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뭘요. 이 가게는 다들 아침이나 밤에 와요."

"점심에는 사람이 잘 안 죽으니까요. 죽어도 주변은 해가 져야만 다들 받아들이죠."

"드로우도 사랑을 하나 보군요."

"... 우리도 사람일 뿐이니까요."

"그렇죠... 주문은 어떻게 하시겠나요."


왼쪽에는 다양한 종류와 크기의 관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오른쪽엔 창문 밖으로 아침햇살이 뜨고 있는 것이 보였다.

벽부터 천장과 바닥까지 모두 나무로 된 이 가게는 마치 마음을 열고 눈물을 거둬주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과 같았다.


"... 종족은 엘프예요. 키는 6척 조금 안되고. 비와 습기에도 강한 나무를 써주셨으면 하고 시신이 단단히 고정될 수 있게 해 주세요. 뚜껑을 원할 때마다 열고 닫을 수 있게 해 주시고 등에 지고 다녀야 하니 관 하단이 제 무릎부근까지 올라갈 정도로 어깨끈을 달아주세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요."

"시체를 다른 곳에서 묻어주려고 그러는 건가요? 아니면 부활시키려고?"

"... 모르겠어요."

"만드는 동안 시신을 보관해 드릴까요?"

"... 아뇨. 아마. 썩지 않을 거예요 그건."


잠시간 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와
없는 묵주를 넘기는 손의 살이 비벼지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 알겠습니다. 관에 세기고 싶은 문양은 있으신가요?"

".... 저갈.... 그리고 라센더."

"알겠습니다. 내일 새벽에 오시면 모두 준비해 두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가게에 나와 깊게 한숨을 한번 쉰 오에의 표정은 평소와 같이 없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지금은 힘들더라도, 1년, 10년, 100년, 500년 후에는 괜찮아질 것이라는 걸.

바로 다음날이 오늘보다는 덜 아플 것을.
살다 보면 괜찮을 거라는 걸.

그녀는 이 마을을 떠날 준비를 하였다.
발더스게이트에 그의 육체를 다시 묻어주기 위해.
그러곤 자신도 나아가기 위해.

그녀는 물과 식재료들을 샀다. 육포와 마른 빵. 긴 방랑에도 쉽게 상하지 않을 것이다.

새 양말과 장화. 치료물약과 밧줄까지 사 동굴에 다시 들어오자 해는 져가고 있었다.

동굴 안으로 들어오는 석양빛이 아스타리온의 몸을 타고 올라와 뺨을 붉혔다.

눈꺼풀까지 올라오자 마치 그가 눈을 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 당신은 석양 밑에 가장 아름답구나.

오에는 손으로 아스타리온의 뺨을 쓰다듬으려다 멈칫했다.

그녀의 그림자가 그의 얼굴을 가려 다시 그의 창백한 시신이 보였다. 오에는 그런 차가운 몸을 조용히 쓰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 바보 같아."

자신이 배운 모든 가르침이. 남자 하나 때문에 무너진다니. 한심한 일이었다.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이는 바보 같은 짓이었다.

아스타리온은 오에에겐 존재하지 않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모든 건 기로 이루어져 있다. 기는 생명이고, 이가 모여 우리가 된다.

그러나 오에는 한 번도 아스타리온의 몸에 기가 흐르는 걸 본 적 없었다.

이쪽으로 대화를 하지 않아 아스타리온은 몰랐겠지만. 오에가 기의 흐름을 보고 있을 때 아스타리온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스타리온은 살아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아무래도 언데드니깐. 하지만 모든 건 기라는 걸 말하지 않았는가.

기의 부재는 그녀의 스승과 동료들이 그들을 배척하는 이유였다.

그러니깐 아스타리온은. 과거의 오에의 기준으론. 존재하면 안 되는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아스타리온은 존재했다.
말을 했고, 감정이 있었고, 목적이 있었다.

소위 말하는 영혼이라는 게 있는 이였다.

그렇다고 자신이 배웠던 모든 게  틀렸던 걸까?

어쩌면.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었으니.

그렇기에 떠났던 것이다.
방랑했던 것이다.
한 곳에서 알 수 있는 지식이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기에.
진리가 될 순 없기에.

당신은 누구였을까.
당신은 누구였긴 했을까
메피스토의 인형이었을까
아니면 죽은 이의 유령이었을까

그렇기에 오에는 다시 떠날 것이다.
진리에 다다르기 위해.
자신이 사랑하던 이가 뭐였는지 이해하고 추억하기 위해.
나아가기 위해.

발더스 게이트로.



"... 그러니 아스타리온. 날 바보라고 책망해 줘요... 그런 걸 알아봤자 어디에 쓰냐고 말해줘요. 그냥 살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해줘요."



"해가 다시 뜰 때까지만 슬퍼하게 해 줘요."


아픈 성장통이다.